본문 바로가기
기초경제용어공부

실크로드의 의미와 유래 그리고 역할

by 월살남 2023. 6. 11.
반응형

실크로드의 의미에 대해서 알아보고 언제부터 실크로드가 시작되었는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실크로드의 역할을 알아보겠습니다.

 

실크로드의 의미

  실크로드는 중앙아시아를 횡단하는 고대의 동서교통로로서 독일의 지리학자인 리히트호펜이 자이덴슈트라센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 그 시초입니다. 자이덴슈트라센은 독일어로 비단길을 뜻하며 이를 영어로 하면 말 그대로 실크로드가 되는 것입니다. 실크로드란 이름은 이 길을 통해 고대 중국의 특산인 비단이 서쪽으로 운반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이처럼 실크로드는 중국의 비단이 중아아시아와 이란, 메소포타미아의 오아시스 도시를 거쳐 로마에 운반된 대상로였습니다. 로마 제국에서는 인도로부터 들여온 기술로 직접 비단을 만들어 팔기도 했습니다. 기원전 6세기 무렵 그리스에서 비단이 사용되었다는 기록과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원정은 페르시아 인이 독점하고 있던 비단 무역을 손에 넣기 위함이었다는 설로 보아, 이 길이 옛날부터 열려 있었던 것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실크로드는 서방의 여러 나라와 북방아시아의 유목민이 상용해 온 모피, 전(펠트), 융단 등 여러 모직물류가 중국으로 운반된 길이었던 것입니다.

유래

  중국과 서방의 교역료는 역사서에 정식 기록되기 이전부터 통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서방과 공식적으로 교통 하기 시작한 것은 한나라 무제의 명령으로 장건이 중앙아시아에 파견된 후부터입니다. 그의 여행을 계기로 서역이라는 중아아시아나 서방 각지와 국교가 열리게 되었고 상인이 중국을 방문하여 진귀한 물품과 문물을 가져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장건이 비단길을 연 사람으로 기록된 것은 위와 같은 이유에서 입니다. 중국은 한 무제가 대월지(중국 전국시대부터 진, 한 시기까지 중앙아시아에서 활약한 민족)와 연합해 흉노의 서쪽 변방을 공격하려고 장건을 서역에 파견한 이후 서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중국은 장건이 개척한 비단길을 이용하여 서방과의 교류를 활발히 진행시켰습니다. 이후 한이 서역에 둔전을 실시하고 기원전 60년에 서역도호부를 설치함으로써 비단길을 통한 교류는 더욱 활발해졌습니다. 중국의 비단이 유명한 이유는 중국의 전설에 따르면 비단은 기원전 2700년경 황제의 정원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황제는 황후 서릉에게 뽕나무에 해를 입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서릉 황후는 뽕나무를 살펴보았고 희 벌레가 뽕나무 잎을 먹고 광택이 나는 고치를 짓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황후가 우연히 뜨거운 물이 든 찻잔에 고치를 떨어뜨렸더니 섬세하고 거미출처럼 얽힌 실이 고치에서 나왔고 황후가 그것을 잡아당기자 가는 한 가닥이 고치에서 풀려나왔습니다. 이것이 비단의 시초입니다. 이 전설처럼 비단은 중국에서 최초로 만들었습니다. 중국인들이 누에고치의 비밀을 엄격히 지킨 까닭에 약 3000년 동안 중국에서만 비단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역할

  실크로드가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유로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우선 실크로드는 동서를 잇는 무역로로서의 역할을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특산인 비단이 서쪽에서는 옥이나 보석, 유리제품 등이 이 길을 거쳐 운반되었습니다. 또 사자와 포도, 석류, 호두, 완두, 참깨, 오이 등의 식물류, 비파, 공후 등의 악기, 음악의 무용, 요술, 곡예를 비롯하여 중앙아시아와 서아시아의 산물과 풍속이 중국에 전해졌습니다. 또한 인도의 불교, 이란의 조로아스터 교와 마니교, 네스토리우스 파의 크리스트 교, 이슬람 교 등의 종교도 전해졌습니다. 중국에서는 철제품을 만드는 기술과 양잠, 제지법과 화법을 서방에 전했습니다. 이처럼 실크로드는 상업로로서뿐 아니라 동서 문화의 전달로 역할로서도 큰 의의를 갖고 있었습니다. 실크로드는 장안(지금의 시안)에서 시작해 옥문관에 도착한 후 누란에 이릅니다. 여기서 길은 톈산 산맥을 사이에 두고 남로와 북로로 나뉘는데 어느 노선이든 서역을 지나게 되며 파미르 고원에서 다시 합쳐집니다. 파미르 고원에서 이란 고원을 지나면 티그리스 강에 도달합니다. 여기서 강을 따라가면 페르시아 만에 이르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시리아의 아티오크에 도착합니다. 페르시아 만을 떠나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홍해를 건너면 나일 강 삼각주가 나타납니다. 안티오크를 떠나 홍해를 지나면 소아시아나 발칸 반도에 이릅니다. 그러지 않고 지중해 동쪽 언덕을 따라 남하하면 알렉산드리아에 닿습니다. 이곳에서 바다를 건너 로마에 도착하는 것으로 실크로드는 끝이 났습니다. 중국과 서남아시아 문화권을 연결했던 이 길은 몽골 제국이 이 두 문화권을 포함하는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자 자연히 그 역사적 의의를 잃어갔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