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광복 이후에 미국과 소련이 우리나라의 남과 북에 각각 진주하게 되면서 6.25 전쟁이 발발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일본 경제를 설명하고 일본의 유명 기업을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한국의 6.25 전쟁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연합국에 항복하여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면서 우리 민족은 36년간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 마침내 광복을 맞게 되었습니다. 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지사들과 징용에 끌려갔던 우리 동포들도 고아복을 맞아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립이 한국의 힘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연합국의 영향이 컸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온전한 자주독립국이 될 수 없었습니다. 미국과 소련 양국의 군대가 우리나라의 남과 북에 각각 진주한 것입니다. 소련군은 1945년 8월 북한에 미군은 9월 초 남한에 머물며 각기 다른 이념으로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남한에서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북한에서는 한 달 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습니다. 광복의 기쁨을 얼마 누리지도 못한 채 분단의 비국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남과 북으로 분단된 후 남한의 경제는 무척 어려웠습니다. 지하자원도 없었고 대부분의 생산 시설이 북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군사적으로도 남한은 북한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병력도 북한의 절반에 불과한 데다 무기와 장비도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운데 1950년 6월 25일 북한은 38도선 전 지역에 걸쳐 남침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국군은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도 북한군에 맞서 용감히 싸웠습니다. 그러나 북한군을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답니다. 그때 북한군의 침략으로 긴급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는 북한 공산주의자들을 침략자로 규정짓고 유엔 군의 한국 파병을 결의했습니다. 그리하여 16개 나라에서 군대를 보내와 우리 국군과 함께 싸웠습니다. 매우 위급한 상황에 놓였던 남한은 유엔군과 인천 상륙 작전을 계기로 반격하여 서울을 되찾고 북한으로 진격했습니다. 북한 공산군은 소련을 앞에서 휴전을 제의해 왔고 미국과 소련은 더 이상 전쟁이 무의미하다고 합의하여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3년여에 걸친 전쟁으로 국토만 폐허가 된 채 분단국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3년에 걸쳐 진행되었던 6.25 전쟁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베트남 전쟁과 함께 세계 최대의 국제 전쟁으로 우리 측과 북한 측 모두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겨주었습니다. 민간인을 제외한 양측의 인명 피해는 240만 명에 달했으며 우리 측의 사상자는 국군 90만 명, 미군 40만 명, 유엔군 3만 명, 북한 측의 사망자는 인민군 51만 명, 중공근 약 50만 명으로 부상자도 수십만 명에 달했습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하여 부모를 잃어 고아가 된 아이들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상처는 이러한 물질적인 피해보다 정신적인 면에서 더욱 심각한 후유증을 낳았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국민들 사이에 원한과 불신의 장벽이 생기고 서로를 원수로 여기에 하여 통일의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들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일본 경제
제2차 세계 대전에 패한 일본의 경제는 해외 식민지와 시장의 상실 그리고 생산설비의 파괴로 인해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전쟁 후에 실시된 농지개혁으로 종래의 소작농 중심의 농업이 자작농 중심의 농업으로 발전하며 농촌시장의 확대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파업권 획득으로 정치, 경제적 지위가 높아진 노동자들이 도시 소비시장의 확대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이러한 소비시장의 확대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6.25 전쟁이었습니다. 6.25 전쟁에서 일본은 군사보급기지의 역할을 담당하며 중화학공업과 경공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국제시장에 복귀하는 속도로 가속화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부흥하기 시작한 일본 경제는 1974년까지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높은 성장률을 보였습니다. 이와 같은 고도성장의 원인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여 가격경쟁에 임할 수 있었던 것과 달러화와 엔화의 환율이 안정되어 있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후반기의 성장 원인은 산업합리화, 기술혁신, 대형투자 등에 의해 일본 제품의 국제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을 신장시켰다는 점입니다. 모든 산업에 있어 기술혁신이 이루어졌고 1956년~1970년까지의 기간에 주요 산업의 시설 투자는 7배로 늘었습니다. 특히 1965년 이후부터는 국제 수준의 대형 투자가 전개되었습니다. 수출의 신장은 특히 1956년 이후 일본 경제의 성장에 크게 공헌하였으며 1969년에 일본의 국민청생산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로 급부상하였습니다. 그러나 1970년대 후반에 닥쳐온 세계 경제의 위기는 일본 경제에도 장기적이고 심각한 타격을 주었습니다. 그동안 미국이나 유럽 국가의 심한 인플레이션 덕분에 일본 제품이 국제적으로 선두에 설 수 있었으나 오늘날 유럽 제국의 관세세정책으로 인해 자리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제품의 생산기지를 점차 일본 국내에서 세계 각국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본 제국의 국제적 점유율을 더욱 높이겠지만, 일본의 국내시장 확대에는 기여하지 못했습니다. 1991년부터 후퇴하기 시작한 일본 경제는 경기 후퇴에 따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2000년대 들어서도 계속 불황에 시달리고 있지만 아직도 그 경제력은 막강합니다. 일본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계속해서 공공부문 투자 확대와 같은 경기 부양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유명 기업
우리나라에 삼성, 현대, LG와 같은 유명한 대기업이 있듯이 일본의 유명한 회사들로는 어디를 꼽을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일본의 최대 회사로는 도요타자동차를 들 수 있습니다. 이는 일본을 대표하는 최대 기업이며 세계에서도 막강한 경쟁력을 갖춘 초일류기업입니다. 도요타자동차 외에 소니, 미쓰비시, 혼다, 닛산, 도시바, 산요, 닌텐도, 소프트뱅크 등이 일본에 있는 세계적인 기업입니다. 우리나라의 국민은행과 같은 최대 은행으로는 미즈호파이낸셜, 도쿄미쓰비시은행을 꼽을 수 있습니다. 경제 규모가 큰 만큼 은행사업의 규모도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밖에도 히타치, 미쓰이 등의 거대 기업들이 많이 있습니다. 세계 500대 기업 중에 일본의 기업이 80개가 넘게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에 우리나라는 아직 큰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서 더욱더 발전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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